손해 늦은 밤 그는 책상 앞에 앉아 셈을 하였다. 빈 노트에 이름을 적어 내려가며 끼칠 감정의 손해를 헤아려 인간의 총량을 정하였다. 그리하여 누구는 안으로 들이고 누구는 바깥으로 밀어내며 넘치게 소모되지 않고 그가 그로 존재할 수 있도록 남은 이름만 가슴에 새겼다.
대여섯 살 무렵 가족들이 주로 생활하던 예전 집은 무너트려 새 집을 지었는데, 그 옆에 시멘트 벽돌로 지은 세 칸짜리 별동은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별동은 작은 방 하나와 창고, 수세식 화장실이 딸린 일자형 건물이었다. 엄마 말로는 아빠가 어릴 때(정확하게는 고등학생 시절 정학을 당한 시기에) 인부들과 함께 지은 집이라고 했다. 가장 왼쪽의 미닫이문을 열고...
뒤처지다 나는 사실 A와 B를 비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오로지 혼자 서 있을 뿐. 그 뿐이다.
구경 너는 나를 잘 모르겠다고 말하지 알 수 없는 나를 믿지 못하겠다고 말하지 그렇다면 어디 좁은 목구멍에 네 머리통을 들이밀고 내 새빨간 마음을 들여다 봐 나를 속속들이 구경하는 너를 아주 삼켜버리게
다툼 너는 나와 다퉈서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하지만 내겐 너와 다툴 만큼의 문제가 없는걸 나는 있는 그대로의 너를 이해해
하지 못한 말 너와 헤어져서 다행이야
이탈 사방이 굳었다. 새하얀 눈과 같은 포말이 뒤덮여 석고한 시간과 사물과 나 자신. 빛도 흡수하는 분청한 장면은 영원히 박제하고 싶은 절정이었으나 굳은 것은 결국 죽는 것이다. 나는 몸을 꿈틀대어 아주 작은 파열을 이루었다. 벌어진 틈으로 조그맣게 숨을 쉬자 그것은 실바람이 되어 나를 걸어당겼다. 그렇게 나의 끝까지를 도망한 후 나는 껍데기를 버려둔 채 ...
지역 어른들은 종종 우리 동네가 크고 사람이 많다고 했다. 마을을 비스듬히 가로지르는 큰길을 기준으로 왼쪽 오른쪽을 나누어 지명을 따로 부르기도 했으니 물리적으로 꽤 큰 편인 건 알겠으나, 다른 곳에 살아본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가구의 숫자나 인구 밀도 같은 것이 쉽게 체감되진 않았다. 다만 마을 안에 중학교가 있고 그중 절반이 동네 아이들이었던 것을 생각...
가벼움 부디 나를 가벼이 여겨주기를 어느 무렵 어느 계절에 문득 함께한 기억을 떠올려 주기만 한다면 나는 계속 존재할 것이니
멀미 너에 대한 모든 착각을 평형기관의 오류로 치부할 수 있다면. 너를 떠올리면 여지없는 어지럼증이 몰려온다.
따로 서로를 쥐어뜯은 흔적은 엉망으로 아물어 상처는 더 이상 통증을 느낄 수 없게 되어 이제는 우리가 따로 되어 외따로, 떨어져, 이제는, 이음새가 맞는 짝을 찾아 헤매 맞춰질 리 없는 조각을 내밀면서
되풀이 지난 실수를 되풀이하는 인생처럼 느껴질 때가 있겠지만 거기서 꼭 교훈을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좋다 이번의 인과는 다음의 인과와 같지 않고 당신은 이미 예전의 당신과 같지 않으니
소설, 시, 에세이를 주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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