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었다. 밧줄을 붙잡고 바다를 표류하는 꿈. 물결이 얼굴을 덮칠 때마다 숨을 쉬기 위해 발버둥치면 파도는 더 높아졌다. 그 움직임이 오히려 격렬한 파동을 촉발하는 듯 느껴져, 가만히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자 사위가 잔잔해졌다. 나는 귀가 물에 잠긴 먹먹한 감각을 느끼며 햇빛이 내리쬐는 물결 위에 떠있다가, 어느 순간에는 둥둥 떠있는 나를 위에서 내...
초겨울 제 때 들이지 못한 야자나무 한 그루는 에어컨 실외기 옆에 노란 잎을 축 늘어트리고 죽었다. 작년 봄 싹을 틔울 때부터 비실거리던 바질도 결국 시들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러나 이 둘을 제외하면 우리집 식물들은 올해로 5년 째 실내 생장을 무난히 이어가고 있다.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한 공기 때문에, 낮에는 미세먼지 때문에,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작한...
이렇게나 하고 싶은 일이 없는 불금은 처음이다. 저녁밥도 배달로 시켜 먹고, 태블릿PC에 틀어놓은 실시간 TV는 보는 둥 마는 둥하며 거실 바닥에 누워 시간을 낭비하다가, 오랜만에 심즈나 해볼까 싶어서 노트북을 켰다. 지루한 업데이트를 끝내고도 막상 플레이 버튼은 못 누르고, 기다리는 동안 틀어두었던 알쓸인잡만 끝까지 시청했다. 김상욱 교수의 뒤샹 이야기가...
나혼자 산다를 보았다. 기안84의 서른 아홉과 마흔. 새해가 지난 지 한참이지만 영상을 보니 마음이 연말연초의 그것처럼 울렁거렸다. 삼십대를 영원히 잃는 것에 크나큰 상실을 느끼는 그를 보면서 나이듦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저 사람이 놓지 못하는 청춘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내게는 없는 감각이다. 떠올려 보면 나는 언제나 나이들고 싶었다. 그건 외...
봄과 가을은 걸어서 퇴근이 가능한 귀한 계절이다. 지난 가을, 새로 구입한 헤드폰으로 그무렵 빠져있던 Puma Blue의 음악을 들으며 긴 퇴근길 산책을 나섰다. 낮이 짧아진다. 벌써부터 태양은 볕을 등 뒤로 부드럽게 드리운다. 사박사박. 거리로 떨어진 낙엽을 밟는다. 일부러 인적이 드문 길을 골라 걸으면 오히려 사람의 손이 덜 닿아 웃자란 나무와 수풀이 ...
6월.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얼음 틀'에 얽힌 할머니의 기억을 풀어내던 중에 접한 소식이었다. 다른 인생을 살아온 두 분의 마지막 계절. 인생의 단편이 이토록 우연히 겹치는 일은 드물 텐데, 끝을 향해 가는 할머니 이야기가 이렇게 덧씌워진다. 외할머니는 몇 년간 치매를 앓으셨다. 농사일로 허리가 굽은 지는 이미 오래되었고 마른 몸은 늘 연약해 보였으나,...
나는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물욕이 없는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왜일까? 나는 왜 가지고 싶은 물건이 없을까? 흠. 아니다. 나는 물욕이 없는 것이 아니라 물욕이 생겨도 소비까지 잘 이어지지 않을 뿐이다. 내 나름의 기호와 기준을 충족해야만 결제를 할 수 있는데, 그것이 어렵다. 결과물이 적기 때문에 남들은 내가 '물욕이 없다'라거나 '검소하다'...
표시 미안해 너를 한 번 그어볼게 빨갛게 나를 남기고 뒤돌아선대도 상처받기 없기
열등감 나는 사람들의 잘난 점이 미치게 부럽고 질투나. 열등감은 지금의 내가 노력하는 이유의 팔할이지만 나머지 이할은 나를 포기하게 만든 이유이기도 하지. 그러니 나는 백 퍼센트 열등감 덩어리가 되고 말아. 그러나 나는 다른 누군가가 나를 미치게 부러워하고 질투한다는 것도 알고 있어. 그 사실을 알고 나면 우리는 더 이상 슬퍼할 필요가 없게 돼. 우리는 서...
드물게 나는 이제 드물게 고통스럽고 너는 아주 드물게 사랑스럽다
태도 퍼펫의 사지에 묶은 줄을 당기듯이 적절한 태도를 유지하도록 스스로를 구속한다. 이 줄을 끊어버리면 어떤 인간이 살아 움직일까 가끔 궁금할 때가 있다.
고민 나는 대부분의 경우 고민을 고민하거나 선택을 고민한다.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한다. 고민을 고민하는 건 미련한 짓이고 선택은 고민할 시간을 줄이는 게 현명하다는 생각. 숙고 끝에 내린 선택 뒤에는 또 다른 선택이 있고 나는 최대한 멀리까지 결정해 보고 싶다는 생각.
소설, 시, 에세이를 주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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